☆과연 사는 데 도움되는 학종이의 재미있는 교양상식☆
정치 포스팅 하는 걸 별로 안좋아한다.
낫 온 마이 백 야드랄까... 답이 없는 논쟁이 내 블로그에서는 일어나지 말았으면하는 바람이 있다.
제목이 정치 불신에서 오는 포스팅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물론 맞다.
아니, 누군들 아니 그렇겠는가?!
여하튼 이 포스팅도 결국 '과연 사는 데 도움되는 학종이의 재미있는 교양상식'시리즈의 하나다.
믿거나 말거나.
앞에서 대충 말했지만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내가 보수이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정치는 허상에 불과하다. 어쩌면 우리는 정치 자체를 부정하고 비판해야한다."
의회민주주의.
국민의 대표가 의사결정을 한다는 이 이상적이고 멋들어진 전리품은
유럽의 시민혁명에서 피로 얻어낸 위대한 성과이다.
아쉽게도,
자본주의와 뒤섞여 지금은 '1%'의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는... 이 제도 말이다.
지금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월가 시위.
2011년도 다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확실히 '이건 좀 아니다'라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서론이 너무 길었나?
양념을 펼쳐 놨으니 이제 주 재료를 가져와서 요리를 할 시간이다.
오늘의 손님은 바로
L. Altusser
이다.

[사진1] Louis Pierre Althusser (1918.10.16. - 1990.10.22.)
알뛰세 선생. 저 눈... 보이는가? 냉철하게 모든 걸 간파해버릴 것같은 매서움!
국가에는 여러 '기구'가 있다.
주민센터, 정부, 경찰서, 소방서, 학교, 종교단체, 시장 등등...
셀 수 없는 엄청난 기구들이 국가를 지탱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듯,
이런 기구들은 국가를 존속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존속'은 긍정적으로 볼 수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아무래도 난 좀 부정적인 듯하나.
참 재밌는 건 개인적으로 기능론의 효용을 무척 존중하는 편이라는!
여튼 존속의 긍정과 부정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기회가 있으면 이야기하도록 하자.
참고로 오늘의 포스팅은 존속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했음을 알려둔다.)
너무나! 잘~~~알고 있는 이러한 생각.
먼저 이 아이디어에 익숙지 않은 분들을 위해 쉽게 개념을 정리하고 가자면... (왕친절ㅋ)
과거 '모노폴리'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두 배우 김성수와 양동근이 차를 타고 지나가는 장면이다.
어느 밤, 둘은 차를 타고 가다가 신호대기를 하기 위해 정지선 앞에 선다.
횡단보도에는 어떤 노부부가 포장마차를 끌고 간다.
김성수 : 저 부부에게서 뭐가 보이낭?
양동근 : 희망?
김성수 : 근데 그 희망이 모두 허상에 불과하다면?
양동근 : 그게 뭥미?
김성수 : 저들이 아무리 근면하게 노력해도 잘 살 수 없는데, 만일 그걸 알면 이 사회는 붕괴되지.
그래서 허상인 희망을 저들에게 보여주면서 사회를 유지시키는 거얌~
양동근 : 누가?
김성수 : 1%가.
대화 내용이 대략 이러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디어에 매~우 익숙해서 진부하게 느껴지겠지만,
혹시 개념이 서지 않는 어린 친구들이 이 글을 설마, 혹시, 읽을 수도 있지 않겠나? ㅎㅎㅎㅎ
여하튼,
1%가 이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이런 기구를 사용한다 뭐 그런 의미다.
(아~ 할 말은 많지만, 글의 중심을 벗어나지 않으리 ㅋㅋㅋㅋ)
다시 알뛰세로 돌아와서!
알뛰세는 이 사회가 사회를 지탱하는 '기구'를 두가지로 나눴다. 바로,
1. 억압적 국가기구
2.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이다.
요 두가지가 어떻게 다르냐?
1. 억압적 국가기구
먼저 좀 더 주요한, 눈에 보이는, 대량으로 기능하는 억압적 국가기구는....
말 그대로 사회의 질서에 벗어나면 억압적으로 교정을 하는 곳이다.
감옥, 경찰서가 이것인데,
살인자나 강간범을 우리는 반드시 잡아서 벌해야 이 사회는 유지된다.
당연한 것.
2.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중요한 건 2번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이다.
이것은 보통 사적인 듯 보이나 영향력이 엄청난데,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를 대량으로 주입하는 곳이다.
중세의 교회가 그랬고, 근대 이후의 학교가 가장 유명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이다.
얼마전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표기 논란이 일었다. (이 외에도 많았지....)
이는 학교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중에 매우 중요한 기구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순종'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아름답게 포장해서 가르치게 되면
일반 대중은 '순종'이 당연히 선하며 옳은 것이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연 비판의식이 없는 착한 국민으로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아마 그 어린이는 창조적이고 저돌적인 CEO가 되긴 힘들 것이다.
좀 더 재미있는 예를 들어볼까?
얼마전에 한국 주입식 교육의 폐단을 알 수 있는 문제가 인터넷에 떠돌았다.
바로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다.
그럼 심심풀이 땅콩으로 문제를 풀어보셔도 좋습니다.

[사진2] 얼마전 인터넷을 떠돌던 주입식 교육 테스트.
다들 '신기하다, 재밌다'의 반응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무섭다'가 맞을 지도.
그나저나 사진 왤케 기냐 ㅋㅋ;;
"그래서 결국 오늘 내가 하고자하는 말은"
정치도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와 같은,
이런 상징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제부터는 내 생각이다.)
지금 FTA때문에,
얼마 전엔 서울 시장선거 때문에,
그 조금 전엔 무상급식과 포퓰리즘 때문에,
국회는 하루도 쉬지 않고 피터지게 싸우고 있다.
'싸우고 있다'
'싸우고 있다'
'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누군가는 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세상은 어떻게든 바뀌며 세상의 변화를 위해 국회는 오늘도 떠들고 있다'
'그게 내가 원하는 방향이건 아니건 여하튼...'
이런 생각 자체가,
국회라는, 정치라는 제도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소수 진보 정당들은 안되면 몸으로라도 싸워서 어떻게든 돈 없는 약자의 편을 들고 있다.
물론 특정 노동자들과 같은 99%에게는 반가운 소식일지 모르겠으나
궁극적으로 봤을 때 이런 싸움 자체로 해결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개인의 이익은 있을 수 있어도 모두의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없다.
정치에 대한 기대가 없는 건 나만의 문제도 아니고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니다.
멀리 봤을 때, 정치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물론, 1%에게는 예외겠지만.)
하지만 또, 또, 매일 싸우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대변해서, 그들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부딪쳐 싸우고 있다.
우리는 욕하면서도 매일 그 꼴을 보고 산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이 사회를 지탱하게하는 지배자들의 헤게모니를 주입하는 좋은 방법인 것이다. (메타적 사고 要)
화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상황에 따라 화법을 나누기도 한다.
화법 수업을 들을 때 그런 화법들을 분석한 적이 있다.
이 중 뉴스 화법엔 재미있는 점이 있다.
사람이 죽고, 경기가 어둡고, 모두가 힘들다는 뉴스를 내보내면서
결국 이 모든 것이 언젠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시청자에게 심어 준다.
뉴스를 한 번 곰곰이 뜯어 보자.
뉴스가 시작하면 정치인들은 싸우지만/ 결국 합의점을 모색하는 중이고, 며칠 후엔 악수를 한다.
대형참사가 나서 인명피해가 나기도 하지만/ 일각에선 추모의 행렬이 줄을 잇고, 이웃돕기 성금이 쌓인다.
범죄자가 활동하지만/ 결국 구속되어 수갑을 차고 경찰서로 들어간다.
뉴스는 이 어두운 현실에서
역설적으로 희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알뛰세 선생이 '국회'를 무슨 기구로 분류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부는 억압적 국가기구긴 한데...
굳이 분류하자면 법을 만드는 곳이니까 억압적 국가기구라고 해야겠지.
뭐 그게 어떻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정치에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읽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나의 어설픈 주장이 말이 되건 안되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개념은 충분히 흥미있는 내용이며, 중요한 개념임이 틀림 없다.
마지막으로 진짜 하고싶은 말을 덧붙인다.
이런 교양상식을 우리 젊은 대학생들이, 다시 말해 교양인, 지성인이라면 알았으면 한다.
요즘같은, 누구나 대학가는 학력 인플레 시대에 힘든 일인 것 나도 안다.
그래도 대학생이지 않은가. 대학생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교양인의 타이틀을 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우민화정책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전전대통령이 즐겨 썼던 3S정책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너무나도 똑똑하게도
우민화정책의 한 방법으로 '청년실업'을 이용하고 있다.
내가 사회학도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여기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
우리 나라가,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지 말든지,
요즘 우리 대학생은 도서관에서 토익 책을 펴 놓고 스펙을 쌓고 있다.
그게 바른 대학생의 모습인 것처럼 우리 부모님도, 일부 교수님 마저도, 대학생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다.
이는 너무나도 효과적인 우민화 정책이다. 이 정권 정말 대단하다. 똑똑하다.
물론 스펙 쌓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간의 반만, 아니 1/10만 투자해서 교양서적을 읽고 사상을 키웠으면 한다.
대학은 지성인이 다니는 곳이지
결코 취업 준비생이 다니는 곳이 아니다.
취업 준비생이 가득한 상아탑에는 *호민(豪民)은 없고 우민(愚民)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당신은 엉덩이에 종기가 날 정도로 도서관 의자에 앉아 있는 한낱 '우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출처 : 네이버지식사전
역사적으로 혁명은 봄에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봄이 되면 따듯해져 노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겨울이 다가 온다.
2012년 4월의 총선이 혁명이 될 수 있을까?
그나저나 20년 전에 이런 글을 썼음 난 잡혀 갔겠지 ㅋㅋ
여튼 정치 포스팅은 피하리라...ㅋㅋㅋㅋ
이건 언제까지나 인문학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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